
나는 한여름에도 해수욕장을 가지 않는다.
계곡을 가긴 하지만
계곡물에 몸을 담그지도 않는다.
몇번 수영을 배워보려고 문화센터에 가 본적이 있지만, 입수조차 하지를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한 기억 하나가 평생을 따라 붙어서 나는 그 날의 감정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해운대 바닷가.
여름 햇볕에 달궈진 모래, 발목을 간질이던 파도, 짭조름한 바닷바람의 냄새가 아직도 선명하다.
튜브를 타고 떠 있던 나는,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신나고 자유로웠다.
그런데 갑자기 커다란 파도가 밀려왔다.
튜브와 함께 멀리 밀려가면서 파도를 뒤집어 쓴 그 순간. 차가운 물이 코와 입을 막고, 귀에는 ‘웅―’ 하는 소리만 가득했던 그날.
몸부림을 치며 허우적거리던 그 순간, 머릿속은 하얘졌다. “여기서 끝나는 걸까?”
다시 밀려온 파도가 정신을 차릴 수도 없이 허우적대던 나를 해변 쪽으로 밀어냈다.
그러다
간신히 발을 딛고 일어나 보니, 물은 고작 발목까지 차오르는 얕은 깊이였다.
하지만 그 순간 내 몸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느끼는 것은 그저
가슴은 미친 듯이 뛰는 것이었고, 손발은 떨렸으며, 그 공포는 세포에 깊이 각인되었던 것이다.
어어어...하던 사람들이 안심하면서 미소를 짖던 것 까지 생각난다.
그 순간 부끄러웠던 기억까지 생생히.
수영장 근처에만 가도 이유 없는 두려움이 차 오르는 건 그때 그 기억의 잔상이 지금도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1. 몸은 기억을 저장한다
기억은 뇌에서만 저장 되는 게 아닌 것이다.
사실, 이 경험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었다.
내 뇌가 상황을 잊어도, 몸은 그날의 감각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심장이 빨라지고, 손바닥에 식은땀이 맺히는 반응은 세포가 두려움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신경과학자 가보르 마테는 “기억은 생각이 아니라 반응이며, 몸은 우리가 의식하는 것보다 훨씬 깊이 기억한다”고 말한다.
즉,
기억은 뇌에 갇힌 데이터가 아니라 몸 전체가 참여하는 생리적 기록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브리인 노트 P.2에서 나는 어떤 냄새를 맡았을 때,
잊고 있던 과거의 한 장면이 갑자기 떠오른 것을 적었었다.
그와 같이 그것은, 단순한 감각의 반응이 아니다.
인간의 기억은 단지 ‘뇌’에 저장된 데이터가 아니라, 신체의 다양한 세포들과 긴밀히 연동되어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뇌과학자 존 메디나는 “기억은 하나의 장소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경험과 감정이 얽힌 전체 시스템의 일부다.”라고 말한다
즉,
기억은 데이터가 아니라 신체가 함께 참여하는 기록이라는 것이다.
어린 시절 받은 따뜻한 포옹이나 평생을 물의 공포를 가지게 만드는 것은 단순히 생각만으로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 기억을 품은 세포들이 우리 몸 어딘가에 감각의 흔적으로 남아 있어 비슷한 일이 생길 때마다 소환되는 것이다.
2. 몸 전체는 ‘감정의 기록장’이다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 종종 속이 쓰리거나 머리가 지끈거리는 신체 반응을 경험한다.
긴장할 때 어깨가 뭉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감정은 추상적인 기분으로만 남지 않고, 생화학적 신호로 변해 세포에 흔적을 남긴다.
조 디스펜자는 이를 두고 “몸은 매 순간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분자 단위로 기록한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세포는,
단순한 생명 단위가 아니라, 감정과 기억을 함께 저장하는 기록 장치인 셈이다.
세포들은 외부 자극을 기억하고, 그것에 따라 반응한다.
그러므로 기억한다는 것은,
뇌의 독립적 작동이 아니라, 감정과 호르몬, 면역체계까지 통합적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의 결과.
결국,
우리는 머리가 아닌, 온몸으로 기억하는 존재다.

3. 기억은 재구성되고, 세포는 반응한다.
기억은,
고정된 파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불러낼 때마다 다시 조립된다.
고정된 구조가 아니라, 매번 호출될 때마다 재구성된다는 말이다.
이 과정에서 신체 세포들은 그 기억과 연결 된 감정을 재현한다.
그래서 트라우마성 기억을 떠올리면 심장이 빨라지고 손이 떨리는 반응이 매번 반복된다.
세포 차원에서 몸은 그 순간을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심리치료 연구에 따르면,
“치유는 기억을 지우는 일이 아니라, 몸이 반응하는 방식을 새롭게 쓰는 것”이라고 한다.
즉, 우리가 호흡법·명상·신체 움직임을 통해 몸의 반응을 바꾸면, 뇌 역시 새로운 기억 회로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기억을 바꾸려면 몸이 먼저 달라져야 한다.
세포의 반응부터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호흡법, 명상, 걷기 같은 단순한 행위가 도움이 되는 이유는 몸이 먼저 이완을 배우기 때문이다.
몸이 달라지면 뇌도 그에 맞추어 새로운 회로를 형성한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두고 *“트라우마 치료는 말로만 되는 게 아니라, 몸이 먼저 낫고 마음이 따라온다”*고 설명한다.
또한 데이비드 퍼슨은 “몸은 우리가 잊었다고 생각하는 것까지 기억하고 있으며, 마음이 놓친 것을 몸은 붙들고 있다”고 강조한다. 이 말처럼 기억은 뇌의 데이터가 아니라, 전신이 함께 연주하는 하나의 생리적 합주에 가깝다.
결국 기억을 바꾼다는 것은 새로운 선택을 몸에 새기고, 그 반복 속에서 세포가 반응을 달리하도록 훈련하는 과정이다.
작은 숨 고르기 하나, 새로운 시도 하나가 기억의 경로를 다시 짜는 첫 걸음이 되는 것이다.
이제 알았으니 실행만이 남은 것이다.
마무리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더 몸에 의해 기억한다.
마음이 흔들릴 때 몸을 돌보면, 그 몸이 새로운 기억을 다시 써 내려간다.
기억은 과거에 묶어두는 족쇄가 아니라, 오늘 내가 몸으로 어떻게 살아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열린 문장이다.
그것이 반복될 때, 뇌도 함께 새로운 길을 만든다.
생각해보면,
어떤 기억은 향기로, 어떤 기억은 통증으로, 어떤 기억은 낯선 카페의 조명처럼 스쳐간다.
그 기억의 조각들이 단지 ‘뇌’ 속이 아니라, 온몸의 세포에 새겨져 있다면 —
우리는 더 이상 자신을 과소평가할 수 없다.
기억은 역시,
'존재의 깊이를 말해주는 또 하나의 언어였구나'를 인정하면서 포스팅한 하루였다.
※ 참고도서
《The Body Keeps the Score》 — Bessel van der Kolk
《When the Body Says No》 — Gabor Maté
《Molecules of Emotion》 — Candace Pert
《Your Body Remembers》 — Suzanne Scurlock-Durana
《 The Biology of Belief》 — Bruce H. Lipton
《Heart Intelligence》 — Doc Childre 외
《Unlocking the Emotional Brain》 — Bruce Ecker 외
《The Body Remembers》 — Babette Rothsch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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