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조용필의 노래를 따라가며
각 시대가 감정을 표현하던 방식을 기록하는 R 시리즈의 네 번째 글이다.

어린 시절,
TV 속에서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정녕 그대는 나의 사랑을 받아 줄 수 없나"라고 외치던 그의 모습은 충격이었다.
그것은 이전의 절절한 트로트도,
감미로운 발라드도 아니었다.
심장을 때리는 강력한 비트와 함께 찾아온 거대한 폭풍이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의 환호가 가득했던 그해 여름.
거리마다 울려 퍼지던 노래는 단연 '모나리자'였다.
조용필은 이 노래를 통해 사랑을 구걸하는 약자가 아니라, 운명에 맞서 포효하는 한 마리의 표범처럼 무대를 장악했다.
그 시절, 우리는 그를 보며 깨달았다.
그리움도 때로는 이토록 격렬하고 화려할 수 있다는 것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하던 시대,
눈치 보지 않고 노래로 내 지를 수 있어서 흥분되던 그 시대...
1980년대 후반,
'모나리자'에 담긴 거부할 수 없는 매혹
조용필이 10집 앨범을 통해 선보인 '모나리자'는 그야말로 파격이었다.
신디사이저의 화려한 전주와 함께 터져 나오는 그의 고음은 듣는 이들의 전율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1. “내 모든 것 다 주어도 그 마음을 잡을 수는 없는 걸까”
이 노래의 첫 질문은
사랑의 고백이 아니라 좌절의 선언이다.
모나리자의 미소는 아름답지만 차갑다.
다 주어도 가질 수 없는 상대,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갈구하던 '완성된 사랑' 혹은 '이상향'이었을지도 모른다.
1988년은 대한민국이 세계를 향해 문을 열던 역동적인 시기였다.
산업화의 정점에서 사람들은 물질적 풍요를 얻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채워지지 않는 정서적 허기가 있었다.
“의미 없는 미소만 남기고 떠나간” 대상은 단순히 연인이 아니라,
우리가 뒤쫓던 신기루 같은 시대의 풍경이었을 것이다.
이미 모든 것을 내주었고, 그럼에도 닿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1980년대 초반의 한국 사회는
열심히 일하고, 참고 견디고, 헌신하면 언젠가는 보상받을 수 있을 거라 믿던 시대였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개인의 노력과 감정은 구조 앞에서 번번이 무력해졌다.
그 허무함을 조용필은 슬픈 눈물이 아닌, 폭발적인 사운드로 치유했다.
슬픔을 에너지로 승화시키는 법을 그는 노래로 가르쳐 주었다.
이 문장은 연인의 마음을 향한 말이면서 동시에,
시대에게 던지는 질문처럼 들린다.
“이만큼 줬는데도, 왜 아직도 안 되는 걸까?”
그 시절,
레코드점 앞을 지나갈 때면 '모나리자'의 전주만 들어도 가슴이 뛰었다.
특히 부산의 거리거리마다, 축제와 행사장마다 이 노래는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였다.
사람들은 그 비트에 맞춰 몸을 흔들며, 닿지 않는 무언가를 갈구하듯 소리 높여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의 목소리는 더 이상 항구의 이별에 머물지 않았다.
그것은
현대 도시인의 갈증이었고,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꿈을 향한 외침이었다.
그는 '모나리자'라는 신비로운 상징을 통해, 대중가요의 격을 한 단계 높여놓았다.

2. “미소가 없는 그대는 모나리자 / 눈물이 없는 그대는 모나리자”
모나리자는 웃고 있는 것 같지만, 감정이 없다.
미소도, 눈물도 없는 얼굴.
이 가사에서 ‘그대’는 더 이상 한 사람이 아니다.
표정은 있으나 진심은 없는 대상,
겉모습은 안정적이나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존재다.
당시 사회는
질서 있고, 발전 중이며, 문제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개인의 감정은 그 안에서 말해지지 않았다.
웃어야 했고, 참아야 했고, 울어서는 안 됐다.
모나리자는 ‘표정만 허락된 시대’의 얼굴이었다.
3.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다 돌아서야 하는 걸까”
여기서 화자는 선택의 기로에 선다.
계속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돌아설 것인가.
하지만 돌아선다는 건 쉽지 않다.
이미 사랑했고, 이미 매달렸고,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을 그 곁에 두었기 때문이다.
이건 개인적 미련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이 쉽게 체제를, 관계를, 조직을 떠나지 못했던 이유와 닮아 있다.
알면서도 남아 있는 상태.
그게 이 시대의 기본 자세였다.
웃고 있지만 응답하지 않는 대상,
다가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 관계.
그 앞에서 사람들은 떠나지 못한 채, 계속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있었다.
4. “끊임없이 속삭이며 그대 곁에 머물지만 이토록 아쉬워”
요란하게 외치지 않는다.
속삭인다.
그리고 떠나지 못한 채 머문다...
이 대목에서 조용필의 노래는 격해지지 않는다.
절규하지 않고, 차분하게 반복한다.
이건 저항의 노래가 아니다.
체념과 집착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마음의 기록이다.
1980년대 대중의 감정도 그랬다.
분노보다 먼저 나온,
“그래도 조금만 더 버텨보자”는 마음이었다.
5. “정녕 그대는 나의 사랑을 받아 줄 수가 없나”
가장 솔직한 고백은 가장 처절한 법이다.
이 질문은 반복된다.
대답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반복된다.
반복은 희망이 아니라 미련의 형식이다.
"가련한 내 모습"을 인정하면서도 멈추지 않는 그 외침은,
당시 청춘들이 세상과 부딪히며 느꼈던 좌절과 열망을 대변했다.
받아주지 않는다는 사실보다
확인받지 못한 상태가 더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리움은 이제 기다림을 넘어,
뜨겁게 타오르는 불꽃이 되었다.
조용필은 그렇게 우리의 가슴 속에 꺼지지 않는 열정의 한 페이지를 적어 넣었다.
그래서 이 노래는 끝내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헤어짐도, 변화도 없다.
다만 계속 묻고, 계속 슬퍼할 뿐이다.
6. 기억의 한 문장
조용필의 '모나리자'는 사랑 노래의 형식을 빌려
감정이 허락되지 않았던 시대의 얼굴을 그린 노래였다.
수동적인 그리움을 거부하고,타오르는 갈증을 예술로 승화시킨 시대의 선언이었다.
그 노래는
차가운 미소 뒤에 숨은 진심을 찾으려 했던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가 무언가에 열광하고 싶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뜨거운 이름이다.
📍 가사 출처: 조용필 〈모나리자〉 (1988)
작사: 박건호 / 작곡: 조용필 / 노래: 조용필
ⓒ YPC Production / 지구레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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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 시리즈 | 시대와 닮은 노래 ]
▶ 광복 80주년을 맞이하여 열린 KBS 대기획 - "조용필 이 순간을 위하여"
R1. 돌아와요 부산항에 → 떠남과 기다림의 시작
R2. 단발머리 → 변화와 욕망이 처음 드러난 순간
R3. 창밖의 여자 → 안과 밖으로 나뉜 삶의 시선
R4. 모나리자 → 표정은 있지만 감정은 없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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