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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기록하다

조용필 그 시절이 남긴 사랑 R3 ㅣ 창 밖의 여자 - 사랑 이후의 철학

by iipopnamu 2025. 11. 10.

가늘게 떨리는 그의 목소리 속엔, 시대를 견딘 사랑의 결이 있었다.

 

 

 

1. 시대의 공기 속으로

 

1970년대 후반, 한국 사회는 산업화와 도시화로 요동치던 시기였다.
삶은 바빠졌지만, 마음은 늘 창가에 머물렀다.
사람들은 일터에서, 거리에서, 그

리고 라디오 앞에서 각자의 사랑을 조용히 되뇌었다.

 

그 시절의 사랑은 기다림이었다.
직접 말하지 못한 마음을 음악이 대신 전했다.

 

"별이 빛나는 밤에~"

아직도 귀에 생생히 들리는 듯한 별밤을 알리는 시그널 송과 DJ 이종환님의 목소리.

시험 준비를 하다가도 끌어 당겨서 듣던...순수의 시절.

내 아이가 태어나던 해가 1979년이니 그 바쁜 시간 속에서도 나는 그 시간을 기다리곤 했었다. 

밤마다  라디오의 선율 속에서 사람들은 사랑을 배우고, 이별을 익혔다.

그때, 한 남자의 목소리가 모든 이의 마음을 멈추게 했다.

> “창가에 서면 눈물처럼 떠오르는 그대의 흰 손.”

그 한 줄은 ‘보고 싶다’보다 더 슬픈 문장이었다.
그는 그대를 부르지 않았다.
단지, 바라볼 뿐이었다.
바라봄 속의 사랑 — 그것이 바로 70년대식 순정의 철학이었다.

창가에 앉아 바깥을 바라보는 남자의 흑백 일러스트.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 감성을 표현한 이미지.
창밖을 바라보는 남자의 뒷모습, 그리움은 늘 창문 너머에서 시작된다. (출처: Pixabay / Free-Photos)

 

2. 창밖의 여자, 그 한 줄의 철학

 

“돌아서 눈 감으면 강물이어라.”


이 가사에는 시간이 흐른다.
사랑이 흘러간 자리를 강물로 비유한 건,
‘붙잡을 수 없는 것’을 가장 순하게 받아들이는 표현이었다.
그대는 떠났고, 남은 건 흐름뿐이었다.

> “거리에 서면 그대는 가로등 되어 내 곁에 머무네.”

그는 사랑을 잃고도 빛으로 기억한다.
‘그대는 나의 곁에 머물러 있지 않지만, 나의 길을 비춰준다.’
이건 단순한 그리움이 아니라 존재의 감사야.
사랑의 끝에서조차 그는 원망하지 않는다.
그 시절의 사랑은 비극보다 고요했고,
떠남보다 남음의 의미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

 

조용필 콘서트 무대에서 ‘창밖의 여자’ 제목이 대형 스크린에 비친 장면. 파란 조명이 관객석을 가득 채운 모습.
1980년, 조용필의 첫 정규 앨범 속 대표곡 ‘창밖의 여자’. (출처: KBS 대기획 〈조용필, 이 순간을 영원히〉 방송 화면 캡처)

 

3.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이 노래의 진짜 시작은 여기서부터다.

>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사랑의 고통을 겪은 이들에겐 이 문장이 칼처럼 들어온다.
조용필은 이 노래를 통해 ‘사랑의 찬미’를 거부한다.
그에게 사랑은 향기가 아니라 불씨,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리움의 무게였다.

> “차라리 그대의 흰 손으로 나를 잠들게 하라.”

죽음의 은유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사랑의 완전한 수용’을 뜻한다.
그대를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그대의 손으로 끝을 맡기겠다는 것.
사랑의 마지막을 ‘존중’으로 마무리하는 문장이다.
이 얼마나 철학적인 사랑의 태도인가.

 

대형 공연장에서 조용필이 ‘창밖의 여자’를 부르는 무대 장면. 관객들이 푸른 응원봉을 흔드는 모습.
어둠 속 푸른 조명 아래, 관객들이 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던 순간. (출처: KBS 대기획 〈조용필, 이 순간을 영원히〉 방송 화면 캡처)

 

🕊️ 마무리 — 사랑의 끝, 기억의 시작

 

사랑은 언젠가 끝나지만,
그 사랑이 지나간 자리에는 기억의 창문이 남는다.
조용필의 노래는 그 창문을 닫지 않는다.
그저 바람이 드나들게 열어둔다.

그래서 이 노래는 이별의 노래가 아니다.
사랑을 떠나보낸 이가, 그리움을 품은 채 살아가는 이야기다.
그의 목소리는 아직도 창밖 어딘가에서 불어온다.

> “그대의 흰 손으로 나를 잠들게 하라.”

그 잠은 끝이 아니라,
다시 살아내기 위한 ‘조용한 쉼’이었다.
사랑이 나를 스쳐간 자리에 고요가 남고,
그 고요는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든다.

오늘도 창문을 연다.
낡은 노래 한 줄이 바람을 타고 흘러든다.
그 순간 나는 안다.
사랑은 사라진 게 아니라,
시간 속으로 옮겨갔을 뿐이라는 것을.


 

📍 가사 출처
조용필 〈창밖의 여자〉 (1979)
작사·작곡: 조용필
ⓒ YPC Production / 지구레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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