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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기록하다

삶에 기대어 사는 법

by iipopnamu 2026. 1. 22.

만나는 사람마다 첫 인사가

"오늘 많이 춥지"  

정말 추웠다고들 말하면서 또 걱정을 보탠다.

"내일은 더 춥다네. 영하 13도래."

 

영하 13도...아직 숫자의 강도를 가늠치 못하는 나는

창문 밖으로 그저 시선만 보낸다.

내일 아침 7시경에는 두정에서 대림까지 가야하기에 

그 추위를 체감 할 걱정을 하며 입고 갈 옷을 생각해 본다.

 

겨울 밤 도심의 지하 공간 벽 앞에 쌓인 박스들.
사람은 보이지 않지만 누군가 머물렀던 흔적이 남아 있는 조용한 장면.
겨울 밤, 누군가의 하루가 잠시 머물렀을 자리.(출처: Canva AI 활용 제작)

 

생경스런 풍경

 

추위를 말하니 문득 생각이 나는 곳, 광화문 지하철 역사다.

거의 막차를 타기 일쑤인 나는 앞만 보느라 옆을 볼 겨를이 없지만 늘 볼수 밖에 없는 풍경이 있다.

 

하루의 무게가 다리로 내려 앉아 얼얼하니 감각마저 무딘 시간이고.

날씨조차도 너무 추운 요즘이라

옆도 보지 않고 종종걸음으로 걸을 때 지나치는,

매일 만나게 되는 생경스런 풍경.

 

처음 그것을 보았을 때는
늦은 밤, 비스듬한 오르막길에 자리한 무더기 더미더미였었다.

그리고 처음 더미 속에 있는 그들을 보았을 때 
“아직도 저런 사람이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고개를 저었고 더 빠른 걸음으로 거길 지나쳤었다.
처음엔 놀람이었고, 그 다음엔 아주 빠르게 생뚱 맞은 걱정이 뒤따르곤 했다.

 

박스를 잘 이어 매일매일 집을 짓는 사람도 있었고

얇은 이불을 둘둘 감고 신발도 신은 채 이불 밖으로 발이 나온 사람도 있었고

침낭의 지퍼를 머리 끝까지 올리고는 죽은 듯이 누워 있는 사람도 있다.

 

박스를 켜켜이 깔고,
침낭 속으로 얼굴을 숨긴 사람은
잠을 자는 게 아니라
세상과 잠시 연결을 끊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기둥에 박스를 묶어
사각형의 집을 만든 사람은
비바람을 막는 동시에
자기 자리를 증명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여기 있다”는

최소한의 경계선을 긋지만 최대한 자기의 존재를 나타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갑작스런 추위에

사람들이 극강의 추위라며 걱정 하는 걸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날씨엔

그 사람들은 어떻게 견딜까
무엇으로 하룻밤을, 몇날 며치을 그 추위를 버틸까.

 

내일에 대한 확신 같은 건 있을 턱이 없어ㅅ 그래서 더 마음이 쓰인다.


지하철 역사에서 만나는 또 다른 풍경

 

우리는 “춥다”를 말할 수 있고,
“걱정된다”를 말할 수 있고,
“집에 가면 따뜻해진다”는 결말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의 하루 속에는 그 문장이 빠져 있다.


그럼에도 또 한편으로는
그 차가운 바닥 위에서도
박스를 고르고, 묶고, 정리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밤을 설계했다는 사실에 나는 안도한다.
그건,

포기가 아니라 아직 삶을 놓지 않았다는 증거 같아서.

아직도 삶에 기대어 사는 법을 찾아내고 있는 것 같아서.

 

그런데 사람들은 그들에게 좋은 잣대의 말을 건네지 않는다.

될대로 되라고 사는 사람들이라고 

최소한의 삶에 의지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의지 박약아들이라고.

 

그건 패배주의자들의 행태라고. 

 

며칠전에는
앉은뱅이로 하모니카를 불며 동냥을 하는 사람을 보았다.

역사안에서 들려오는 운율이 있는 그 소리는 처량하고 애처로웠었다.
그때,

내 옆을 거의 뛰다시피 지나가던 한 청년이 갑자기 멈춰 섰다.
무슨 일인가 싶어 보니
그는 편의점에서 따뜻한 두유 하나를 사 그 하모니카 연주자에게 건넨다.
연주자는 연신 고맙다고 말했다.


또 다른 풍경도 생각난다.

며칠 전,
출근길의 복잡함을 정리해 주던 연두색 조끼를 입은 정리원에게
한 아가씨가 작은 베이커리 쇼핑백을 건넸다.
“늘 감사합니다.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짧은 인사,
짧은 미소.
그건 동정도 아니고 시혜도 아니었다.
그냥
사람이 사람에게 건네는 예의바른 감사인 것이다.

 

도시는 이렇게 몸을 맡길 곳을 남겨둔다,

 

서로 다른 온도를 인지 하기

 

그러고 보면
춥게 보였던 건 아마도,
이 풍경을 빨리 지나쳐야 하는 우리의 속도에 대한 온도였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박스를 엮어서 하루를 위한 집을 만들고,
누군가는 따뜻한 두유 한병을, 케익하나를 건네고,
누군가는 그 사이를 지나 각자의 하루로 돌아간다.

 

나는 이 장면을 마음에 남긴 채
내일 아침,
영하 13도의 날씨 속에서 두 시간 남짓의 거리를 대중교통으로 이동할 것이다.

 

그리고 날씨 걱정을
누군가의 다른 삶과 비교하며 감사로 바꿀 것이다.

 

며칠 전 날씨 얘기로 나를 핀잔하던 친구가 다시 전화를 해서는 걱정을 한다.

"봐봐, 아직 1월이라고 했잖아"

"걱정 마, 넌 겪지 못하고 난 지금 체험 중이니까."

 

세상은 그렇게 한 장면 안에서도 서로 다른 온도로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는 누구나 남의 삶에 조금 기대어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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