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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기록하다

치열함, 물러서지 않는 힘

by iipopnamu 2026. 1. 25.

안개 자욱한 무채색 공간 속에서 두 개의 거대한 직사각형 기둥이 미세한 간격을 두고 마주 서 있는 미니멀한 현대 미술 스타일의 이미지. 기둥 사이 하단에서 은은한 새벽빛이 배어 나오며, 자립과 연대의 철학적 의미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하고 있음
기대어 서되 무너지지 않는 간격, 뒤로 밀리지 않는 힘으로 수호하는 오늘의 자리.(출처:Canva AI 활용제작)

 

생의 정점에서 이토록 치열했던 적이 있었던가. 

 

요즘 나는 내 생애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살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이 치열함은

악다구니를 쓰며 무언가를 탈취하려는 '투쟁의 열기'와는 결이 다르고

입술을 깨물며 무언가를 쟁취하려는 '독기'와는 조금 다르다. 

 

이제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무언가를 더 가지려 달려가는 치열함이  '공격' 이라면,

무너지지 않기 위해 내가 선 자리를 묵묵히 지켜내는 치열함은  '수호' 에 가깝다는 것을.

지금의 나는 온전히 후자의 중력에 몸을 맡기고 있다.

 

거리가 주는 피로보다 더 단단해야만 하는 내 본질

 

매주 2번 왕복 다섯 시간의 궤적을 그린다.

그리고 나머지 날도 2시간을 소요한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집을 나서고, 

어둠이 짙게 깔린 밤이 되어서야 돌아오는 일상. 

주말을 반납하기가 일쑤인 나날들.

 

물리적 거리는 분명 육체의 피로를 가중시키지만,

이상하게도 그 긴 거리가 내 삶을 갉아먹는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 길 위에서 나는 내가 얼마나 단단하게 땅을 딛고 있는지 확인한다. 

길 위에서 보내는 물리적인 시간보다, 

그 시간을 견디며 서 있는 '내 마음의 자세'가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회사 일도 그렇다. 

여전히 바쁘고 정신없으며 늘 완벽하지도 않다. 

그런데도 일이 나를 집어삼키지 못하는 건, 

내가 일을 더 잘하게 되어서가 아니다. 

일이라는 파도에 휩쓸려 내 실존의 중심을 잃지 않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일 앞에서 내 존재의 전부를 다 걸지 않는 '적당한 거리두기'는 방관이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한 이성적 선택이었다.

 

고립되지 않는 단독자

 

나는 여전히 혼자 울컥하고, 

점심값 같은 현실의 무게 앞에 마음이 움츠러들며, 

누군가에게 받기만 하는 것 같아 스스로를 못마땅 해 하는 여린 사람이다.

 

세상을 향해 주먹을 쥐기보다

침묵하며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는 나는, 여전히 소심하고 가냘픈 존재일 뿐이다.

 

하지만 그 주머니 속에서 나는 내 삶의 열쇠를 꽉 쥐고 있다.

비록 큰 소리를 내지는 못해도,

내 안의 작은 평화만큼은 결코 내어주지 않겠다는 치열한 의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들은 

내 곁의 온기를 떠나지 않고 기꺼이 불어 넣어준다. 

대단한 조언이나 도움을 주지 않아도, 그저 그 자리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 내 존재를 증명해준다. 

생각해보면, 

내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나 자신이 강해졌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약해질 때 기꺼이 곁을 내어준 이들 덕분이고, 

이 세상이 나에게 그리 적대적이지만은 않다는 걸 몸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자립'을 혼자 꼿꼿이 서는 일이라 생각하지만, 

살아보니 혼자 서는 사람은 금방 지치기 마련이다. 

진정한 자립은 타인에게 살짝 기대면서도 서로를 무너뜨리지 않는 '적당한 간격'을 이해하는 일이다. 

 

그 부드럽고도 팽팽한 거리를 지키는 사람만이, 

그 유연한 거리를 아는 자들만이 결국 생의 끝자락까지 도달한다.

 

그리고...

 

어느덧 4개월이 흘렀다. 

이 삶의 방식이 정답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다만, 도망치지 않고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서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은 분명하다.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내가 보낸 무수한 침묵의 순간들이 곧 나의 치열함이었다.


어쩌면 치열함이란 

보이지 않는 목적지를 향해 돌진하는 폭발력이 아니라, 

거센 조류 속에서도 뒤로 밀려나지 않으려는 '존재의 정교한 저항력'일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나는 오직,

그 저항의 힘만으로도, 충분히 잘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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