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치 않는 제안을 받을 때,
거절보다 더 어려운 건
거절했는데도 끝나지 않는 설득이다.

어떤 일을 하려고 사람들이 모여 있다.
나는 그 자리에 없다.
정확히 말하면 끼지 않았다.
그 일이 싫어서라기보다는
일단 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지금의 나에게는 여력도 없고,
무엇보다
마음도 없는 일을 누군가를 위해서 하는 일이 되는 순간 그 일은 더 이상 내 일이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나는 늘 그 무리에 함께 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같이 웃고, 같이 앉고, 같은 방향을 보던 관계는 한 번의 불참으로도 어색해지고 금이 간다.
상대는 그 일을 “당연히 함께하는 것”으로 밀고 들어온다.
선택의 여지를 묻기보다 왜 안 하느냐를 먼저 묻는다.
“혼자 자리만 뻥 뚫리는 건 보기가 싫어”
“다들 같이 하는데 너만 빠지면 좀 그렇지 않나?”
이 질문이 압박처럼 느껴질 때 나는 설명보다 침묵을 선택하게 된다.
이 질문은 질문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판단에 가깝다.
당연한 것은 없는데 여기에는 내 의사가 낄 자리를 내어 주지 않는다.
내 시간을 재단되고,
내 태도를 의심하고,
내 자존감을 슬쩍 건드린다.
그 순간 나는 거절하지 않는다.
덕분에 애매해진다.
웃고, 넘기고, 말을 아낀다.
상대를 상처 입히고 싶지 않아서,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아서.
하지만 그 수동적인 태도는 오히려 오해를 키운다는 걸 안다.
상대는 나를,
잠시 비켜 있는 사람으로 이해한다.
곧 돌아올 사람,
조금만 더 밀면 움직일 사람으로 여긴다.
나는 거절하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 설득의 대상이 된다.
그제야 알게 된다.
아니 알고 있었지만
이 소극적인 '결정장애자' 같은 내 행동이 얼마나 상대에게 잘못하고 있는건지를.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선택이 중립이 아니라는 건지를.
침묵이 때로
가장 오해 받기 쉬운 대답이라는 것까지를.
관계는 무시하기 힘들다.
그래서 더 어렵다.
하지만,
관계를 이유로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끌어안는 순간,
그 관계는 이미 다른 모양으로 우리들 사이에 자리한다.
나는 그 일을 하지 않기로 한 것이지
그 사람들을 밀어낸 것이 아니다.
다만, 그 경계가 설명되지 않았을 뿐이다.
거절은,
냉정한 행동이 아니라 스스로를 분명히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말을 하지 않을 때,
우리는 종종 원하지 않는 역할 속으로 밀려 들어간다.
거절은 늘 소란을 남긴다.
거절하지 않으면 나는, 내 자리를 잃는다.

아무도 앉지 않은 의자는, 내가 선택한 자리였다.
이제는 안다.
관계를 지키기 위해 침묵했던 시간보다
조용하게라도 내 자리를 밝히는 일이 오히려 관계를 오래 남긴다는 것을.
조용한 방관자가 아니고
내 자리서 그들과의 더 좋은 관계를 위해
능동적 거절이 모두에 대한 내 예의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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