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변한 건 없다.
다만 방향은 분명해졌다.
이 기록은 그 확인에 가깝다.

희열보다 먼저 온 안도
때로는 조용한 기다림이 가장 큰 소란을 몰고 오기도 한다.
블로그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오늘,
그래프가 가파른 수직선을 그리며 솟구친 걸 보았을 때 나는
내 온몸을 두드려대는 그것을 느꼈다.
숫자가 주는 희열보다 먼저 찾아온 것은 '누군가 내 마음의 문장을 읽어주었다'는 안도감과 연결의 감각이었다.
어제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었다.
"글이 재미가 없는 걸까, 아니면 잘못 쓰인 걸까."
유입을 하나둘 헤아릴 수 있을 만큼 정체된 지표 앞에서,
내가 남기는 이 지식들이 과연 누구에게 가닿고 있는지 고민하며 밤을 지새웠었다.
하지만
시스템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고,
나의 글들은 그 안에서 조용히 자기 자리를 찾아 분류되고 있었던거다.
그리고 오늘,
마치 그에 대한 대답이라도 들려주듯 멈춰있던 그래프가 수직으로 솟구쳐 올랐다.
누군가는 이 글을 보면서 웃을 수도 있겠다 싶지만
'69'라는 숫자를 보는데...잠시 멈칫했었다.
'맞나?'
쓰는 사람에서 '남기는 사람'으로의 이동
이제 우리는,
단순히 글을 쓰는 행위에 머물지 않는다.
파편화 된 정보를 나만의 시각으로 재구성해 '지식'으로 남기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런면에서
유입이 늘지 않아 고민하던 어제의 시간은 실패가 아니라,
검색 엔진과 독자들이 내 지식의 가치를 알아보기 위해 거쳐야 했던,
필연적인 '숙성의 시간'이었구나...내게 공감 한다.
지식은 유료화되거나 거창한 형식을 갖춰야만 가치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발견되어 읽히는 그 순간,
비로소 살아있는 지식이 된다.
묵묵히 쌓아온 시간의 대답
우리는 늘 결과를 서두른다.
오늘 뿌린 씨앗이 내일 당장 꽃을 피우기를 바라고,
밤새 눌러 쓴 글이 아침이면 누군가에게 닿아 큰 반향을 일으키기를 소망한다.
하지만 삶의 그래프는 늘 정직하다.
아무런 변화가 없어 보이던 그 '조용했던 시간'들은 결코 멈춰있던 것이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토양을 고르며, 오늘 같은 눈부신 상승을 준비하고 있었을 뿐이다.
익숙함 속의 낯섦, 그리고 일상의 재발견
오늘 하루는 유독 바쁘게 흘러갔다.
예약 발행조차 해두지 못할 만큼 숨 가쁜 일상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분주함 속에서 글의 소재는 더 선명해졌다.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꽃,
퇴근길 붉게 물든 노을,
그리고 내일 있을 천안으로의 장거리 출근을 앞둔 긴장감까지.
익숙했던 풍경들이 문득 낯설게 다가올 때,
우리는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낀다.
감성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매일 반복되는 단조로운 일상 위로 나만의 시선을 한 줌 얹는 것,
그것이 바로 마음을 움직이는 글의 시작점이 된다.
다시, 길 위에서
이제 다시 길을 떠날 준비를 한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장거리 출근길이겠지만,
나에게는 또 다른 문장들을 수집하러 가는 여행길이 될 것이다.
오늘 그래프가 보여준 그 뜨거운 응원을 등에 업고,
나는 다시 하얀 화면 위에 마음을 하나 씩 내려놓는다.
화려한 수식어는 필요 없다.
그저 오늘 느꼈던 이 벅찬 감정과,
내일 마주할 새로운 풍경들에 대한 기대를 담백하게 적어 내려갈 뿐이다.
내 글은 여전히 유입이 폭발적으로 많은 편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정성껏 남긴 지식들은 시스템 안에서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누군가의 필요와 연결되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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