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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기록하다

브레인 노트 P.19 | 엄마, 치매 신약이 나왔대

by iipopnamu 2026. 1. 19.

멈춘 것이 아니라, 깊어지는 시간

"언니야, 나는 요즘 조금 걱정되고 무섭다."

힘 없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동생이 전화를 했다.

 

"엄마가 아무 의식도 초점도 없는 눈으로 자꾸 어딘가를 보고 있는데 그럴 때는 불러도 못 알아 듣고

나중에 촛점이 돌아와서도 그 사실조차 모른다."

요즘은 동생의 이런 전화를 자주 받는다.

 

"고생이 많네"

나는 단지 그 말 밖에 할 말을 찾지 못해 그 말을 몇번이고 했다.

엄마에게 하는 말인지 동생에게 하는 말인지...그냥 그 말만 하고 있었다.

 

기억의 가교를 놓는 의학적 탐구, 치매 신약과 줄기세포


▶ 의학적 전언: 베타 아밀로이드 신약이 열어젖힌 문


최근 의료계의 보고에 따르면, 

알츠하이머의 주요 원인인 독성 단백질을 제거하는 항체 치료제들이 잇따라 승인되며 

치매 치료의 새로운 국면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는 뇌 속의 유해 물질을 씻어내는 '청소'의 단계에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미 소실된 신경세포를 복구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음을 지적하며, 

그다음 단계인 '재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줄기세포는 손상된 신경 조직을 재건하고 생물학적 기능을 회복시키는 유력한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 문헌적 고찰: 존재의 본질과 기억의 메커니즘


치매라는 질환을 바라보는 인간의 관점은 다음 두 서적의 인용을 통해 그 깊이를 더할 수 있다.


→ '리사 제노바'

의《 기억의 뇌과학에 따르면,

기억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정의하는 중요한 요소이지만,

기억이 사라진다고 해서 그 사람의 존재 자체가 소멸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저자는 기억 너머에 존재하는 인간의 존엄성에 주목해야 함을 역설한다.


→ '에릭 캔델'은 저서 《기억을 찾아서》를 통해,

 

기억이란 뇌의 시냅스 사이에서 일어나는 물리적이고 화학적인 변화의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줄기세포 치료는 이러한 물리적 토대를 복구함으로써, 

한 인간이 쌓아온 경험의 궤적을 담아낼 '생물학적 그릇'을 다시 빚는 과정이라 해석할 수 있다.

 

두꺼운 사진첩 속에 켜켜이 쌓여진 추억을 말하는 이미지
기억을 차곡차곡 인생 사진첩 (출처: Pixabay Free)

기적의 성벽에 핀 가장 환한 꽃

 

의학적으로 섬망이나 치매 증상 중 나타나는 '허공 응시'는 

누군가의 의식이 우리가 아는 현실이 아닌,

그만의 깊은 내면 세계나 과거의 기억 속에 머물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내 화장대 위에는 오늘도 엄마가 웃고 계신다.

 

우리가 줄기세포를 연구하고 신약을 기다리는 과학적 이성의 끝에는, 

결국 이렇게 지켜내고 싶은,

억만 개의 데이터로도 치환할 수 없는 저기 저 '엄마의 웃음'일 것이다.

 

'리사 제노바'는 

기억이 사라져도 사랑받았던 감정은 세포 하나하나에 새겨져 남는다고 말했다. 

오늘 엄마가 허공을 보며 침묵하고 계시더라도, 

그 내면의 뜰 어딘가에는 여전히 사진 속 그 환한 미소가 피어있을 것이라 믿는다.


나의 '리멤버링'은 완벽한 과거를 복구하는 기술적 작업이 아니다. 

초점이 흐려진 눈동자 너머에서도 여전히 빛나고 있을 저 미소를 끝까지 믿어주는 일, 

그리고 그 찰나의 온기를 기록하는 일이다. 

 

유리의 성벽이 무너져도 결코 씻겨 내려가지 않을 황금빛 눈물처럼, 

엄마의 이 환한 웃음은 내 기록 속에서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으로 남을 것이다."

 

누군가가 밖을 보지 못하신다면, 우리가 그 누군가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는 기록이 필요하다.

 

섬망과 기록의 가치
 

임상 현장에서는 섬망을 '의식의 안개'라고 표현하곤 한다.

사랑하는 이의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허공을 향할 때, 남겨진 이들은 깊은 단절감을 느낀다.

 

하지만 '리사 제노바'가 말했듯,

 

기억이 사라진다고 해서 존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엄마는 지금,

줄기세포가 재건하려는 그 미세한 신경망의 틈새 어디쯤에서,

우리가 차마 읽어내지 못한 생의 마지막 편지를 쓰고 계신지도 모른다.


'에릭 캔델'의 이론을 빌리자면, 

 

우리의 뇌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고 변화한다. 

우리가 들려주는 목소리, 따뜻한 손길은 기

록되지 않는 데이터일지언정 어머님의 내면에 '정서적 공명'으로 남을 것이라 믿는다. 

 

지금 당장 모든 기억을 복원할 수는 없지만, 

허공을 응시하는 엄마의 곁에서 그 고요한 시간을 함께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기억의 성벽을 지켜내고 있는 것이다.

 

투명한 물방울 안에 흐릿하고 따뜻한 풍경. 기억의 소멸과 보존을 상징하는 추상적인 감성
투명한 물방울 속에 맺힌 아련한 기억의 잔상, 우리가 지켜내야 할 마지막 한 방울의 존엄."

 

기억 너머에서 만나는 온기

 

"기억을 기록한다는 것은 단순히 뇌세포의 물리적 보존을 뜻하지만은 않는다. 

그것은,

한 사람의 생애에 깃든 수많은 만남과 이별, 그리고 그 사이를 메웠던 사랑의 온도를 증명하는 일이다

사진 속 어머님을 환하게 웃게 했던 아버님의 든든한 어깨는 이제 곁에 없지만, 

어머님의 무의식 깊은 곳에는 여전히 그 온기가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리사 제노바'가 말했듯, 

구체적인 사실(Fact)은 잊혀도 그 사실이 주었던 느낌(Feeling)은 영혼의 마지막 보루처럼 남기 때문이다.

 

울엄마의 초점 없는 시선이 닿는 그 허공이 적막한 어둠이 아니기를 바란다. 

그곳에서 다시 만난 아버지의 손을 잡고,

사진 속 그날처럼 다시 한번 아이같이 환하게 웃고 계시기를.

 

줄기세포가 재건하려는 생명의 지도는 결국,

이렇듯 끊어진 인연을 다시 잇고,

흩어진 사랑을 모아 '가족'이라는 이름의 완전한 기억으로 되돌아가는 여정이다.


나는 오늘 엄마의 침묵 속에서 아버님의 부재를 읽는 대신,

두 분이 함께 만들었던 가장 아름다웠던 한때의 빛을 기록한다.

 

기록은 힘이 세다.

그것은 죽음도, 치매도 결코 훼손할 수 없는 우리 가족만의 영원한 주권이다."

 

내 화장대 위에는 오늘도 엄마가 환하게 웃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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