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비가 내렸다.
아침이 되자,
비는 그쳤지만 거리는 젖은 기척을 그대로 품고 있었다.

나뭇잎들은 땅의 온기를 찾아 몸을 낮추었고,
빌딩 사이를 가로지르는 바람에도 서로에게 기대며 다닥다닥 붙어
혼자 떨어지는 일을 유난히 경계하는 듯 보였다.
비가 온 뒤라선지
여름의 초록이 떠난 자리 위로
빗물에 젖어 한 톤 내려앉은 고요한 붉음과 노랑이 켜켜이 쌓였고
가을의 마지막 단면들은 더 깊어지고, 더 선명하게 채색되었다.
헤어짐의 기척을 이미 알면서도
한 번 더 빛을 내어보고자 하는 듯한 색이었다.
마지막으로 떠나는 그들의 가을에 한 겹의 멋을 더했다.
그 마지막까지 자신의 계절을 포기하지 않는 조용한 아름다움,
그것이 가슴을 건드렸다.
바람에 흔들리는 남은 잎들은
마치 스스로의 마지막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조용했고, 단호했고, 아름다웠다.
그 모습 앞에서
나는 한참 동안 말을 잃었고
횡단보도를 가로질러 가야한다는 생각조차 놓치고 서 있었다.
칼바람이 불면 저 낙엽들은
서로에게 부딪히며 갈갈이 찢어질 테지.
그 조차도 결국,
발효하고 승화하여 거름으로 묻히겠지.
아,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음 생을 위한 준비를 하는 거로구나.
알면서도 눈앞에서 일어나는 장면은 아쉽고 경이롭다.
하나라도 놓칠세라 눈에 담는다.

어떤 계절은 사람을 바깥으로 밀어내고,
어떤 계절은 사람을 자기 안으로 밀어넣는다.
오늘
서울의 겨울은 그 두 가지가 겹쳐진 날이었다.
그리고 나는—
처음 맞는 이 서울살이 겨울에
조금씩 나의 속도를 조정하게 되겠지.
문득 정신이 들어 종종걸음을 치며
내 서울살이 첫겨울 속으로 발을 옮겨 놓는다.
도심의 바람은 시골의 바람과 다르다.
더 건조하고, 더 빠르고, 더 직설적이다.
그러나 그 속도 속에서도
나는 내가 숨 쉴 틈을 찾을 것이다.
나도 이 낯선 도시의 계절에 순응하면서
오롯이 나를 공감하기 위한
나만의 시공간을 조용히 구축하게 될 거다.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계절 속에서
조금은 다른 내가 태어날지도 모르고.
첫 겨울의 바람은
그렇게 오늘 나에게 말했다.
“너 정도면 괜찮아. 천천히 스며들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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