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광화문에서 마주한 속도와 여유의 온도차

"창을 연다는 일”
이사 후 세번 째 맞는 일요일 아침.
광화문에 머문 지 벌써 스무 날이 넘었는데
처음으로 창을 열고 밖을 내려다 본다.
그동안은 일에 매여 하늘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 사이 계절은 바뀌었고,
낙엽은 바람에 흩날리고 있다.
세월은 유수같다고 하던가^^
오늘은 일정표도 없고, 약속도 없다.
오랜만에 느긋한 하루를 가져보려고 한다.
창문을 열자 광화문 거리의 공기가 쏟아져 들어왔다.
어딘가에서 마이크 소리가 울렸고,
깃발이 펄럭였다.
마라톤이 한창이다.
사람들은 머리에 띠를 묶고, 저마다의 속도로 달리고 있다.
누군가는 출발선을 향해, 누군가는 반환점을 돌아서 그렇게 교차 중이다,
속도의 차는 어디에도 존재하고 있는거다.
나는 그 장면을 멈춰서 바라만 보는 구경군이다.
오늘, 나는 달리지 않기로 했다.
광화문은 늘 바쁘다.
그러나 그 바쁨은 단순한 움직임이 아니다.
이곳은 수백 년 동안, 한 나라의 의지와 감정이 모여 흐른 자리다.
조선의 정문으로 세워졌던 광화문은
권력의 상징이었고, 동시에 시대의 초상화였다.
전쟁으로 불타고, 복원으로 다시 세워지고,
그 앞에선 늘 누군가가 외치고 누군가는 침묵했다.
오늘날에도 그 장면은 변하지 않는다.
여유의 광장
햇살이 내리는 아침의 광화문은 한 폭의 회화 같다.
커피를 들고 광장을 건너는 사람들,
삼삼오오 벤치에 앉아 햇살을 맞으며 수다 중인 젊은이들.
정답게 손을 잡고 낙엽 떨어진 길을 천천히 걷고 있는 노부부...
도심 속 여유라는 단어가 존재한다면
아마 이런 오전을 말할 것이다.
바람은 부드럽고, 하늘은 투명하다.
멀리서 국기와 깃발이 함께 흔들린다.
그 깃발들 속에는 조용한 일상과
작은 자유의 호흡이 공존하고 있다.
주장과 외침의 광장
하지만 어느 시간이 되면 공기는 바뀐다.
확성기와 함성, 깃발이 높이 솟는다.
각자의 진심이 모여 만들어내는 진동이
세종대로를 가득 채운다.
누군가는 권리를 말하고,
누군가는 진실을 말하고,
또 누군가는 그 말들을 지켜본다.
이 광장은 침묵조차 주장으로 들리는 장소다.
광화문은 늘 ‘의견의 온도’를 가지고 있다.
그 온도는,
때로는 뜨겁고, 때로는 서늘하다.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때로는 낭패로 치닫기도 하지만
어쩌겠나 관점이 다른 것을.
가끔은 어림없는 주장을 하는 그들이 부럽기도 하다.
저들은 적어도 마음을 표현하지 않는가

속도의 광장 — 마라톤과 행진
그 주장들 사이를 가르며
부지런한 이들의 건강한 일상도 어우러지는 아침 광화문,
수천 명의 발소리가 도로 위를 울리고,
그 길을 따라 낙엽이 흩날린다.
누군가는 순위를 위해 달리고,
누군가는 자신과 싸우기 위해 달린다.
국가대표도, 시민도, 여행자도
그 순간만큼은 같은 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다.
정치의 언어와 개인의 호흡,
집단의 외침과 개인의 리듬이
한 공간 안에서 섞인다.
이것이 바로 광화문의 오늘이다.
온도의 차이, 그러나 같은 리듬
누군가의 함성은 뜨겁고,
누군가의 침묵은 차갑다.
그러나 광화문은 그 온도차를 품는다.
이곳은 늘, 서로 다른 시간대가 공존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권력의 문이자 시민의 광장,
시위의 현장이자 축제의 무대,
속도의 경주장이자 사색의 정원.
이 모든 것이 겹쳐져 있는 장소가 바로 광화문이다.

속도의 시대, 광화문은 여전히 서 있다
주섬주섬 옷을 입고 밖으로 나섰다,
천천히 광장을 걸어본다,
광화문을 걷다 보면
시간이 여러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걸 느낀다.
누군가는 내일을 향해 달리고,
누군가는 어제를 되새기며 멈춰 선다.
광화문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다.
그것은 이 시대의 온도계이자, 인간의 속도계다.
재고 기억하고 기록한다,
오늘도 그 문 앞에서는
말들이 오가고, 발소리가 겹치고,
그리고 나는
그 모든 소리를 들으며 잠시 멈춰 선다.
원해서일까?
그 멈춤이 나를 앞으로 밀어주었다.
속도가 전부가 아닌 세상.
광화문 일요일의 공기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 “속도를 잃는 대신, 나는 방향을 얻었다.”
오늘의 나는 그 말을 기억에 기록한다.
그리고 천천히,
내 걸음으로 이 도시를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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