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술이 대신하는 ‘길 찾기’ 속에서 인간이 잃어버린 감각에 대하여

아침의 지하철은 늘 그렇듯 바쁘다.
광화문에서 살아가기 20일정도 되어간다.
이제는 제법 익숙한 길.
그런데 가끔,
이 길이 정말 익숙한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이 길을 오가며
주위를 둘러본 적도 고개를 들어본 적도 별로 없었다.
나는 늘 바닥의 화살표만 보고 걸었었다.
그래야 실수가 없기 때문에 아무런 생각도 없이 목적지를 향한,
안내 화살표가 이끄는 대로 발을 옮겼었다
그저 ‘지시된 길’을 밟고 있었었다.
나는 오늘
광화문에서 선릉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그 사실을 다시 실감했다.
보라색 5호선에서 노란색 분당선을 갈아타는 단순한 여정이었지만,
내 시선은 늘 바닥의 노란색과 화살표만 쫓고 있었다.
주위를 본 기억은 없었다.
길을 찾는 동안 ‘생각’은 없었다.
도심의 길을 걷다 보면 사람들은 늘 바쁘다.
누군가는 휴대폰의 지도를 보고, 누군가는 이어폰 속 목소리를 따라 걷는다.
예전에는 길을 ‘외워서’ 갔지만, 이제는 화살표를 따라가는 시대다.
스스로의 감각보다 시스템이 먼저 우리의 발걸음을 움직인다.
지도 한 장을 펴 들고, 도로 이름과 표지판을 찾아 헤맸던 그 시절엔
길을 잘못 들었다면,
돌아가는 길조차 나 스스로 찾았었다.
그 과정에서 길은 내 기억 속에 새겨진다.
와 봤으되 와 본적이 없었던 것 같은 곳을 눈으로, 몸으로, 향기로 우리는 다시 기억해 내게 된다.
“아, 저 모퉁이에 있던 나무, 그 앞의 붉은 간판.”
"아, 저 식당도 아직도 있네."
길은 방향이 아니라 기억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기억할 필요가 없다.
손안의 네비게이션이 모든 것을 대신한다.
최단거리, 최단시간,
하물며 그 거리와 시간 차이까지 정확히 알려준다.
기술이 대신해주는 방향의 시대
빠른 길이 좋은 길일까
세상은 점점 더 효율을 강요한다.
짧은 시간에 많은 걸 해내는 사람,
정보를 빠르게 흡수하는 사람,
결정을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 ‘유능한 사람’으로 불린다.
하지만 그 속도에 쫓기다 보면
우리는 문득 멈춰 설 줄을 모르게 된다.
길을 잃는 건 두려움이 아니라,
사유의 시작이다.
잠시 멈춰 서는 그 순간,
비로소 우리는 내 안의 방향을 듣는다.
AI와 네비게이션의 세상은 분명 편리하다.
우리는 적어도 이제 길을 헤매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방향을 ‘느끼는 능력’은 점점 퇴화한다.
길을 외우지 않아도 되고, 판단하지 않아도 된다.
기계가 정한 루트에 따라, 최적의 경로를 따르기만 하면 된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점점 더 ‘수동적인 존재’로 변해간다.
전화번호를 외우던 시절이 있었다.
손끝으로 눌러 외웠던 숫자들 속엔 관계의 온도가 있었다.
이젠 그 기억이 스마트폰 속에 저장되어 있다.
기억은 편리함 속에 안착했지만, 동시에 존재감도 잃었다.
기억이 기술 안으로 들어간 만큼,
방향감각조차도 기술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방향성의 상실은 판단력의 상실이다
방향성은 단순히 ‘어디로 가야 하는가’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건 ‘왜 그곳으로 가야 하는가’를 묻는 감각이다.
AI는,
길을 알려줄 수 있지만 이유를 알려주진 않는다.
그래서 요즘의 인간은 ‘도착’을 잘하지만, ‘이유’를 잃어버린다.
네비게이션은 늘 말한다.
“500m 앞에서 우회전하세요.”
하지만 그 말 속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저 효율과 속도만 남는다.
그래서 우리 삶도 점점 그런 식으로 변한다.
빨리, 정확히, 하지만 ‘왜’는 사라진다.
속도가 방향을 대신하고, 효율이 목적을 대체한다.
'방향이란 결국 ‘마음이 향하는 곳’
누군가는 말한다.
“AI는 계산을 하지만, 인간은 의미를 만든다.”
그렇다.
방향은 지식이 아니라 감정에서 비롯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가고 싶은 장소,
지키고 싶은 가치가 곧 나의 ‘지도’가 된다.
그래서 진짜 방향성은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보다
‘무엇을 향해 살고 있는가’를 묻는 일이다.
네비게이션과 대화하는 인간
나는 래비게이션과 종종 대화를 한다.
내가 말한다.
“어디로 가야 할까?”
너는 답한다.
“당신이 가고자 하는 곳으로요.”
그런데 정작 나는, 그곳이 어딘지 모른다.
방향은 내 안에서 시작되어야 하는데,
언제부턴가 바깥에서 정해지는 것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이제 스스로의 길을 ‘결정’하기보다
‘추천’받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음악도, 영화도, 여행지도, 심지어 관계까지도.
“당신에게 어울리는 길입니다.”
그 말 한마디에 우리는 믿음을 건다.
그러나 그 길은 정말 나의 길일까?
인간이 다시 방향을 찾는 법
AI가 알려주는 길은 정확하지만, 감정이 없다.
그렇다면 인간이 회복해야 할 것은 ‘방향감’이 아니라 ‘감각’이다.
길을 찾는 감각, 멈춰 서는 감각, 돌아보는 감각.
그 감각이 살아있을 때, 비로소 방향이 의미를 가진다.
이제는 ‘도착’보다 ‘진행’을, ‘결과’보다 ‘감각’을 신뢰해야 한다.
네비게이션이 주는 정보의 정확성보다,
스스로 길을 기억하는 감정의 진실함이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인간의 삶은 목적지보다 과정 속에서 자란다.
'멈춤의 미학'
그렇다.
빠른 세상에서 멈추는 일은 용기다.
모두가 가속하는 시간 속에서
나는 잠시 나를 되돌아본다.
내가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내가 진짜 원한 길인지,
그저 누군가의 안내선 위를 걷는 중인지.
바닥의 노란 화살표 대신
내 안의 나침반을 따라 걸을 수 있을까.
세상은 계속 속도를 요구하겠지만,
방향만큼은 내가 정해야 한다.
> “속도는 기술이 정하지만, 방향은 인간이 선택한다.”

광화문에서 선릉까지의 길 위에서
광화문에서 선릉까지, 지하철로 대략 30분 남짓.
보라색 5호선에서 노란색 수인분당선으로 단 한 번 갈아타면 되는 출근길.
그 짧은 여정 속에서 나는 오늘 아침 순간 방향을 잃었던 거다.
토요일의 지하철역은 평일보다 느리고 여유로웠다.
나도 별반 바쁘지 않아 갈아타기 위해 가는 동안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걷다가,
낯선 풍경들 앞에서 잠시 멈춰섰던거다.
익숙하던 그 길이 온통 낯설었었다.
"어' 여기가 맞나?"
출근길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공간 속에서
당황한 내 시선은 오직 하나의 색을 찾고 있었다.
노란색.
그 색만이 내 길을 찾아줄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감각의 길을 찾고 있었던 게 아니라,
‘확신’의 길만을 찾고 있었던 것이었다.
결론
오늘도 내일도 나는,
노란색과 화살표를 따라 걸을 것이다.
걷다가 문득 문득
오늘 적은 이 글이 생각 날 것이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 볼 것이다.
분식집, 옷가게, 서점, 꽃가게까지...내 글위로 하나 씩 얹히고 오브랩 되면서 기억에 남아 줄 것이다.
길을 잃은 게 아니라, 생각을 되찾아 기록 해 줄 것이다.
▶ 방향을 잃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자신을 향해 간다.
오늘 내가 찾은 노란색과 화살표는,
어쩌면 내 안의 길을 가리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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