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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기록하다

이사 후 마음 정리 - 짐은 비우고, 나는 덜어내다

by iipopnamu 2025. 11. 7.

 비움은 끝이 아니라 마음이 다시 숨 쉬는 시간이다.

 

떠나온 집, 아직 도착하지 않은 마음

 

창가 근처에서 박스를 들고 이사 준비를 하는 여성의 모습, 새로운 시작의 설렘을 담은 장면
이삿짐을 정리하며 새로운 공간으로 향하는 여성의 모습 (출처: Pixabay / Free-Photos)

 

 

이사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다.
삶의 무게를 들어 올려 다른 곳에 내려놓는 일이다.

방 한 칸을 비우는 동안, 오래된 시간과 감정이 함께 움직인다. 

남겨둘 것과 보내줄 것을 가르는 순간은 결국, 나를 덜어내는 연습이다. 

비워낸 만큼 숨 쉬는 공간이 생기고, 그만큼 생각도 맑아진다.


오래 된 습이

몸이 옮겨가도, 마음은 제자리에 잡아둔다.


나는 그 간극 속을 느리게 걷고 있다.

 

비움은 유행이 아니라 결심이다

수십 년의 시간은 물건의 형태로 쌓여 있었다.
그릇, 책, 작은 조명, 그리고 오래된 옷장.
그 안에는 나를 닮은 수 많은 계절들이 있었다.
이젠 그 계절들을 다른 사람의 시간 속으로 떠나 보냈다.
누군가는 그 속에서 또 다른 계절을 쌓아 가겠지.
 
사람은 물건으로 자신을 설명하려 한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건 지금의 나를 담을 여백이다.
낡은 컵에도 기억이 붙어 있지만, 오늘의 내가 쓸 컵은 하나면 충분하다.
쓸 것들은 대부분 내 에너지를 갉아먹는 미련일 때가 많았었다.

비움은 미루는 일이 아니라 선택의 일상화다.

덕분에 한 가지...한 가지를 덜어낸다.

비우고 나면 보인다. 

무엇을 원하는지, 어디에 시간을 써야 하는지. 

유행처럼 가벼운 ‘미니멀’이 아니라, 매일 실천되는 결심으로 남는다.

덜어냈다고 생각했는데,
아이의 창고 한켠엔 아직 나의 그림자가 남았다.
돌매트의 온기, 겨울을 버티던 코트,
한때 나를 감싸던 것들이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허허실실.
버리지 못한 건 물건이 아니라,
그 시절의 ‘나 자신’이었다는 걸 알았기에.

 

흰 벽 앞에 의자와 작은 탁자가 놓인 미니멀한 공간, 비움과 여유의 감성을 표현한 장면
햇살이 비추는 미니멀한 의자와 탁자, 비워낸 공간의 여백 (출처: Pixabay / Free-Photos)

     

머무는 법을 배우는 시간

 

책과 옷가지 두어가지를 챙겨서 정하지 않은 길 위로 나섰다.

분명 집은 비웠는데,

마음은 아직 어디에도 도착하지 못한다.
천안의 숙소엔 생활이 있지만, 광화문 오피스엔 일상이 있지만.
분명 둘 다 내 집이지만, 어쨌거나 둘 다 내 집이 아니다.
지금 나는 그 사이의 어딘가에서 마음을 뉜다.
그래

이건 불안이 아니라, 머무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다.

 
오늘 비운 상자 하나가 내일의 시간을 만든다. 

비움은 상실이 아니라 회복의 언어다.
짐을 덜어낸 만큼, 나는 가벼워진다.
가벼워진 만큼, 다시 앞으로 간다.

 

덜어낸 자리에서 이 나이의 내가 또 한뼘 자란다.

공간이 정리되면, 기억도 정리된다

 

나는 지금 기록하는 중이다.

 

이 형언치 못하는 상황을 구체적이지 않는 이 현재를,

다시 들추어 볼 때  세포는 기억할까?

 

기억은 물건에 붙어 있다가도, 기록으로 옮기면 가벼워진다.
버리지 못하던 것은 사진 한 장으로 남긴다.
떠나보낸 물건은 다른 사람의 현재가 된다.
나의 과거는 기록에 남고, 현재의 자리는 여백으로 환기된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 뇌의 어수선함도 덜어진다.

쌓아두던 탭을 닫듯, 마음의 탭도 닫힌다.

집중은 여백에서 자란다.

 

작은 정원 앞 벤치와 담쟁이 식물이 어우러진 풍경, 조용한 휴식의 순간을 담은 장면
창가 앞 벤치와 식물로 꾸며진 정원, 머무름과 쉼의 공간 (출처: Pixabay / Free-Photos)

 

비움은 물건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기술이다. 

 

짐을 비운다는 건 단순히 공간을 비우는 일이 아니다.
그 안에는 익숙함을 지탱하던 관계와 기억, 그리고 오랜 나의 습관들이 조용히 남아있다.  
그래서 이사는,

물건을 옮기는 일이 아니라 ‘나를 옮기는 일’이다.  

비워야 새로 들어올 여백이 생기고, 떠나야 새로운 방향이 보인다.  
머릿속의 먼지 같은 생각들이 하나씩 정리되면,  
나는 점점 단단해지고, 동시에 조금은 가벼워진다.  

삶의 짐이란 결국 마음의 무게다.  
이사를 반복하며 배운 건, 버린다는 건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할 자리를 만드는 일’이라는 것이다.

 

오늘은 한 가지 덜어내고, 내일은 그 만큼 더 숨을 쉬자.

 

언젠가는 다시

나의 이름으로 된 집에 불을 켜게 되겠지.
그때는 정든 이불을 개듯,
오늘의 이 길고 긴 이동도 조용히 접어둘 수 있을 것이다.
짐을 덜어낸 자리엔,
비로소 나를 품을 공간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그날 밤엔
창문을 열어 둔 채 잠들 것이다.
어디선가 들어온 바람이
나에게 말할 것이다.

> “이제 괜찮아.
떠난 게 아니라, 돌아오는 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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