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꾹꾹 눌러서 읽고 맘에 담는다.
나는 책을 읽을 때 늘 정독하는 편이다.
마음에 와 닿는 문장을 만나면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고, 때로는 조용히 소리 내어 읊조려도 본다.
그 울림이 내 안에 완전히 스며들 때까지, 문장을 붙잡아 두는 것이다.
김훈의 산문집 첫머리, 라면을 끓이며는 ‘밥’이라는 주제를 통해 삶을 이야기한다.
고단한 자들에게 던지는 그의 문장은,
각자의 삶이 달라도 살아내야 하는 본질에는 차이가 없음을 일깨운다.
밥 한 그릇을 먹는 일이 곧 생을 이어가는 일이듯, 그가 말하는 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존재의 무게와도 같다.
책을 읽다 보면 어떤 문장은 오래 붙잡히고, 쉽게 놓아지지 않는다.
김훈의 산문 속 ‘밥’이 바로 그랬다.
밥은 단순히 끼니를 채우는 음식이 아니라, 존재를 지탱하는 가장 원초적인 행위다.
밥을 씹는 순간은 곧 삶을 이어가는 순간이다.
우리가 아무리 다른 이야기를 하고, 각자의 세계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더라도, 결국은 밥 한 그릇을 앞에 두고 살아 있는 존재임을 확인한다.
어제는 그의 문장에서 나는 삶의 심연을 마주했다.
오늘은 조금 더 단순한 자리에 앉아, 그가 이야기한 ‘밥’을 따라가 본다.
밥 한 그릇에 담긴 무게는 가볍지 않다.
그것은 곧 삶을 이어가는 최소한의 형식이자, 가장 근본적인 희망의 모양이기도 하다.

밥과 고단함
김훈은 밥을 고단함과 연결시킨다.
고단한 자가 밥을 먹을 때, 그 밥은 단순한 곡식의 알맹이가 아니라, 하루를 버티게 하는 무게와 같다.
밥을 먹는 행위 자체가 이미 싸움이고, 버팀이고, 어쩌면 기도일지도 모른다.
밥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곡식이 아니다.
김훈의 글 속에서의 밥은 “살아간다는 것” 그 자체다.
흙과 땀, 계절의 흐름, 그리고 인간의 손길이 모여 한 그릇 밥이 된다.
그는 밥을 통해 세상 모든 존재가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방식을 말한다.
누군가의 노동이 있어야 나의 오늘이 이어지고, 나의 삶도 또 다른 이에게 흘러간다.
그래서 밥은 고독한 개인의 몫이 아니라, 거대한 연대의 증거이자 공동체의 숨결이 된다.
읽다 보면,
단순한 한 끼 식사가 얼마나 많은 땀과 생명을 품고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김훈의 문장은 ‘밥을 먹는다’는 행위의 무게를 인간 존재의 무게와 겹쳐 놓는다.
다 알지만 너무나 당연해서 알지 못하는 일이 세상에는 참 많다.
그래서 감사를 잊고 산다.

그리고 밥은,
언제나 우리를 제자리로 불러낸다.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밥상 위에 놓인 밥은 “너는 아직 살아 있다”라고 말해준다.
김훈은 밥 한 그릇 앞에서 인간의 허기와 채움,
그 양극단의 경험을 동시에 붙잡는다.
굶주림의 고통과 포만의 안도는 사실 다르지 않다.
그 둘은 모두 ‘살아 있음’의 증거이고, 삶을 버티게 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밥은 결국 생존의 상징이자, 동시에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위로의 언어다.
우리는 밥을 먹으며 하루를 견디고, 밥을 나누며 서로의 삶을 이어간다.

광야를 달리는 말
뒤이어 읽은 「광야를 달리는 말」은 또 다른 울림을 던졌다.
아버지가 술에 취해 “광야를 달리는 말이 마구간을 돌아볼 수 있겠느냐”라고 묻던 장면.
나는 그 문장을 오래 붙잡고 있었다.
달릴 곳 없는 시대, 황무지에서 좌충우돌하며 몸부림치던 아버지의 모습이 그대로 겹쳐졌다.
단순히 ‘말’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한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고단함, 그리고 현실을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는 처절한 발버둥이 담겨 있었다.
"조국이란 것이 우리에게는 그리 매력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으스스 부둥켜 안고 싶고 그 품에 안기고 싶은 조국이지만
우리에게 몸부림만 치게 하고..."
광야를 달리는 말은 자유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도망칠 수 없는 역사의 무게를 상징한다.
아버지의 조국은 그러했나보다.

밥과 죽음
책에는 장모와 친구의 죽음을 기록한 대목도 이어진다.
죽음을 경험한 이의 글에서 밥은 더욱 묵직해진다.
떠나간 자는 더 이상 밥을 먹을 수 없다는 사실.
살아남은 우리가 밥을 먹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살아 있음의 특권이자 또 다른 숙제다.
마무리
책을 읽는 일은 결국
‘타인의 문장을 통해 나의 삶을 비추는 일’ 같다.
김훈의 글 속에서 나는 '밥의 무게'와 '말의 광야'를 동시에 만난다.
밥 한 그릇으로 삶을 버티고, 광야를 달리는 말처럼 거친 시간을 견디며, 오늘도 우리는 살아간다.
그의 문장이 내 안에 남긴 울림은 명확하다.
밥은 곧 삶이고, 삶은 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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