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읽는다는 건, 타인의 삶을 걷는 일.
끄적이는 건, 그 길 위에 나를 새기는 일이다.
지난 일요일, 오랜만에 들른 도서관.
책장을 훑어보다가 한 권의 얇은 책이 눈에 들어왔다.
표지에는 투박한 선으로 그려진 중절모를 쓴 한 남자의 얼굴.
익숙하면서도 낯선 인상.
책을 펼쳐보기도 전에 그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나는 이 책을 가슴에 안았다.
"라면을 끓이며"
작가 김훈의 2015년 산문집이다.
책은 때로, 읽기 전이 가장 깊다.
이 책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고 있었다.
구석진 서가의 한켠,
누군가의 손길을 오래도록 기다려온 듯했다.
표지는 해지고, 모서리는 닳아 있었다.
투명 테이프로 덧대어진 흔적이 선명했다.
그 조심스러운 손길에서 누군가의 애정이 느껴졌다.
다시 누군가에게 읽히길 바랐던 그 마음이, 내게까지 전해졌다.
아직 책장을 넘기지 않았지만,
이미 문장들이 다가와 있었다.
뒷표지에 적힌 몇 줄만으로 마음이 흔들릴 수 있다니, 참 이상한 일이었다.

“라면이나 짜장면은 장복을 하게 되면 인이 박힌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공연히 먹고 싶어진다.
.
.
라면처럼 부박(浮薄)하리라는 체념의 편안함이 마음의 깊은 곳을 쓰다듬는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김훈 작가 특유의 묵직한 숨결이 느껴졌다.
생활의 언어로 시작된 그의 글은,
언제나 깊은 사유로 이어진다.
"이래 저래 인은 골수염처럼 뼛속에 사무친다."
ㅡ김훈 작가는 기자 출신의 문장가로,
묵직한 현실과 삶의 본질을 짧고 강한 언어로 담아내는 작가다.
칼의 노래, 남한산성 등 역사와 인간의 내면을 다룬 소설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의 산문에는 오히려 더 깊고 날것 같은 삶의 흔적이 묻어난다.
"라면을 끓이며"는 일상의 소소한 순간과 감정을 담담하게 풀어낸 산문집으로,
우리가 미처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을 대신 짚어주는 글들로 가득하다.
책은 아직 읽지 못했다.
하지만,
읽지 못했기에 더 자주 떠오른다.
이 책은 요 며칠,
내 가방 속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켜주고 있었다.
그 존재만으로도 마음의 여백을 만들어주는 책.
읽지 못한 책이 때로는 지금 내 마음의 상태를 고요하게 비춰주는 거울 같기도 하다.

책은 손에 들기 전부터 마음을 흔든다.
때로는 읽히기보다 기다려지는 책이 더 깊다.
⏳ 오늘의 책
책 제목: 『라면을 끓이며』 – 김훈
출판년도: 2015년
대출처: 동부도서관
현재 상태: 한 줄도 읽지 못했음. 그러나 이미 마음은 책 앞에 머무름.
이 글은
읽지 못한 것조차 기록하기 위한
나만의 작은 시도이자,
느리지만 꾸준한 독서 습관의 시작입니다.
끄적끄적...
끄적임은 존재의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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