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억을 기록하다

엄마하고 떠난 여행 - 내년에도 가능할까?

by iipopnamu 2026. 1. 3.

"와 이래 춥노."

"집에는 언제 가노."

귀찮은 표정의 우리엄마, 연신 아기가 되어가는 우리 엄마.

 

큰 창 너머로 호수와 산 풍경을 바라보며 앉아 있는 세 사람의 뒷모습
아무 말 없이 풍경을 바라보던 시간.

 

1935년생 강아기 여사님.

호적명이 아기라 평생을 아기로 불리우는 우리 엄마.

정작 당신은 그 이름이 싫어서 강순덕여사라고 해야 좋아한다,

 

요즘은 바쁘다는 핑계로 보름에 한번 씩 가던 영주를 한달에 한번도 가기가 힘들다. 

엄마는 내가 멀리 해외에 나간 줄 알고 계신다.

경증치매인 엄마가 자꾸 물어대서 그리 대답했노라고 동생이 말했다.

염치없게도 그게 나를 좀은 편하게 한다.

 

"근데 엄마, 얼마전에 나 엄마 보러 왔다 아인교"

얼마 전 병원에 입원했을 때 병문안을 갔는데도 엄마는 그걸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손이 느리고 실수도 해 대는 통에 나는

늘 일찍 출근하고 아주 늦게 퇴근을 한다.

그 와중에 또 블로그를 하다보니 내게 현재 짬이란 찾아보기 힘들다.

 

얼마 전 아버지의 기일이었는데도 나는 참석치 못했다. 

16년 동안 한번도 빠지지 않았던 나는 그날 한없이 울었었다.

 

구실 제대로 못하는 장녀...불효가 막심하다.

 

12월 21일은 엄마의 생신이었다.

그날의 기억을 기록하겠다고 앉은 책상머리에서 나는 다시 눈물이 난다.

날씨 탓인가...?

 

포레스트 리솜 실내 정원 포토존에서 나란히 앉아 있는 세 모녀의 모습
오랜만에 손을 잡고 앉은 세 사람, 그걸로 충분한 하루.= 오늘의 기억을 사진으로 기록하다

 

 

그날 우리는 제천으로 당일 여행을 가기로 했다.

 

서울에서 막내를 만나 영주로 향해가는 길.

나의 지금을 누구보다 아파하는 막내가 묻는다. 

아침은?

샌드위치 사 왔는데 먹을래? 

커피와 함께 내민다.

그리고 우리 둘은 말없이 제천까지 갔다.

내가 말을 하지 않으니 생각 많은 동생도 꿀 먹은 벙어리다. 

 

엄마는 나를 보더니 함박 웃음을 지으셨다.

 

"니가 온다해서 내 잠도 안 오더라."

"언니 오니까 그래 좋은교"

엄마를 모시고 사는 동생이 좋아서 한마디 건넨다.

 

오랜만에 모인 4모녀.

우린 여행 가는 것을 참 좋아하는 가족들인데...

이젠 엄마의 나이가 걸리고

나의 현재가 걸리고...그렇게 덜그럭 거리면서 천천히 세월 위를 걷는다.

 

겨울 야외 족욕탕에서 나란히 앉아 발을 담그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
추운 날씨에도 웃음이 나는 순간, 물속에 담근 발. 대체텍스트

 

 

날씨가 너무 추워 우리는 몸을 움츠리고 맨 먼저 찾은 곳은

막내가 미리 봐 둔 제천 "포레스트리솜"이다.

돈 만큼이나 참으로 깨끗한 곳이었다.  

온천물에 몸을 담그니 더 이상 좋을 수가 없다는 포만감이 들었다.

불가마 방에서 흘리는 땀은

내 몸의 나쁜 기운을 모두 가져 갈 듯이 땀을 발산케 했다.

 

그 곳은

풍요로움과 여유로움이 어우러져 누구하나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이가 없었다.

시간에 쫓기어 늘 긴장 속에 살고 있던 나는 오늘만큼은 모두 내려 놓고 절로 무장해제가 되었다. 

 

엄마와 나는 늘 손을 잡고 있었다.

 

제천 포레스트 리솜은 박달재 고갯길에 있었다.

 

박달재.

내가 아는 그 박달재인가? 노랫말 속에 나오는 그 박달재?

 

"엄마 울고 넘는 박달재 노래 한번 불러보소."

나는 유튜버에서 노래를 찾아서 같이 박자를 맞추고 가사를 전달한다.

그러자 문득 궁금해졌다. 

 

박달재로 불리는 이유는

박달나무가 많아서라는 설과 박달도령과 금봉이의 전설에서 유래했다는 섷로 나뉜다고 한다,

박달재에 금봉이야~~라고 엄마가 가늘게 부르고 있길래

내친 김에 서치해서 전설을 읽어드렸다.

 

가는 귀가  먼 듯해 조금 큰 소리로 읽어 드렸는데 우리엄마

다 듣고나서 느닷없이 하는 말이

"니 요새 와 그리 예쁘졌노~"

덕분에 한바탕 웃었다.

 

너무 추워서 예정된 곳 두어 곳은 패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맛난 것도 먹고 케익도 하나 사 들고 기분 좋게 귀가를 했는데 우리 엄마가 화가 나셨다.

 

'너거는 와 오늘 내 생일인데 미역국도 한 그흣 안 끓여주노."

 

귀여운 91세 노친네.

하루종일을 당신을 위한다고 했는데 그렇게 아기 같은 투정을 하신다.

 

생신케이크,91세생신,딸기케이크,가족기록,기억을기록하다,엄마생신
딸기로 가득 장식된 생일 케이크 위에 촛불 하나가 꽂혀 있는 모습

 

 

"생신 축하합니다. 생신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업마 생신 축하합니다~!!"

 

켄터키도 시키고 케익도 자르고

용돈까지 전닳하니 다시 함박웃음을 웃어주신다.

그리고 사위가 보낸 용돈에서 다시 5만원권 3장을 꺼내 우리에게 용돈을 주신다.ㅋㅋㅋ

 

내년에는 엄마

미역국부터 끓여 드릴게요.

오늘만큼만 건강하세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