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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기록하다

브레인 노트 P.16 | 비싼 믿음, 싼 질문

by iipopnamu 2025. 12. 14.

얼마 전, 지인이 찾아왔다.
줄기세포 화장품이라며 꽤 고가의 화장품과 디바이스를 함께 들고.

 

기억, 감정, 습관, 의미, 믿음 등의 단어가 원형 구조로 연결되어 있으며, 질문 표시와 물고기 아이콘으로 뇌의 선택과 사고 과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이미지 (출처: Pixabay/Free-Photos)
생각·기억·감정이 서로 얽혀 우리의 선택을 만들어내는 뇌의 내부 지도 (출처: Pixabay/Free-Photos)

 

가격을 듣는 순간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 화장품은 내 월급의 3분의 1이 넘는 금액이었다.
구매라기보다는...솔직히 말하면 강매에 가까운 분위기였다.

그녀는 말했다.
“원래 이 가격인데, 너라서 50% 싸게 해주는 거야.”

그 말 앞에서 나는 계산을 멈췄다.
가격이 싸졌다는 사실을 듣는 그 순간 그냥 생각을 멈춘것이다.

왜 이렇게 비싸야 하는지를 끝내 묻지 못한 채...였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결국 구매를 했다.

 

 

마음이 약한 나는
“지금은 어렵다”는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고
대신 이렇게 말했다.

“3개월 후부터…
그러니까 2월 말부터
25만 원씩 갚을게.”

그 말은 결제 버튼을 누르기 위한 문장이었고,
동시에 나 자신과의 타협이었다.

나는 합리적인 소비를 한 사람이 아니라,
부담을 미래의 나에게 이월한 사람이었다.


그제야 알게 됐다.

 

내가 산 것은 화장품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거절하지 않아도 되는 안도감이었다는 것을.

   > 사람의 뇌는 손실보다 관계를 먼저 계산한다.
      사회적 상황에서는 이성적 판단보다
      불편함을 피하는 선택을 더 빠르게 내린다.

      — 『생각에 관한 생각』(대니얼 카너먼) 요지

지인의 기대가 눈앞에 있는 상황에서
내 뇌는 성분도, 근거도, 효과도 보지 않았다.
대신 “지금 거절하면 어색해질 관계”를 먼저 계산했다.

또 하나의 순간은 할부였다.

 > 비용을 미래로 나누는 순간,
   뇌는 총액이 아니라
   월별 숫자에 반응한다.

    — 『Predictably Irrational』(댄 애리얼리) 요지

“총 얼마인가”라는 질문 대신
“한 달에 25만 원”이라는 문장이 내 판단을 대신했다.

그 숫자는
덜 아픈 선택처럼 느껴졌고,
그래서 더 쉽게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이 글은 줄기세포 화장품에 대한 리뷰가 아니다.
효과를 평가하려는 글도 아니다.

줄기세포라는 단어 앞에서
내 뇌가 어떻게 질문을 멈추고,
어떤 순서로 선택을 바꿔 갔는지를 기록한 노트다.

비싼 것은 종종 믿음을 가장한다.
하지만 믿음은 가격표가 아니라
질문 앞에서 드러난다.

나는 이번에도 구매했다.
그리고 대신,
내 뇌가 선택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하나 더 기록했다.

다음에 같은 상황이 온다면
나는 조금 더 빨리 질문할 수 있을까.

적어도 지금의 나는,
그 질문을 연습 중이다.

아니 나는 매일 연습만 한다.

늘 능동적이지 못한 그 성격을 바꾸지 못함을 스스로 책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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