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레인과 좌판 사이
밤이 깊도록 크레인들은 멈추지 않는다.
휘양찬란한 불빛 아래,
쉼 없이 움직 일 사람들,
밤을 잊은 누군가의 일은 그 누군가의 삶도 따라 움직이고 있다.
거대한 크레인들이
고요한 파도 위를 천천히 가른다.
열일하는 불빛 아래서
수백 개의 컨테이너가 정돈되고,
어딘가로 떠나가고, 또 어딘가로부터 와 닿는다.
그건...‘일’이다.
그들은 오늘도 일을 하고 있다.
보이지 않지만 확실히 존재하는, 세상의 움직임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 일.
도시의 끝자락 거기에도
일은 정해 진 모양이 없다.
동그란 그릇에서는 동그랗게
삼각형 그릇에서는 삼각형으로
길게 짧게 누구도 가늠치 못하는 모양으로 만들어진다.
시장 골목어귀, 오래된 좌판 앞.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은 할머니는 오늘도
삶의 무게를 등에 지고 나와 있다.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은 채소 몇 단,
한 쪽 구석엔 작은 도시락과 물병.
그리고,
아직 유치원에 갈 나이도 안 된 듯한 아이가 앉아있다.
그저...앉아 있다.
그 아이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
나만 왜 유치원에 못가는 지를,
“가르쳐 주지 않아도 난 알거든요.."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채소를 주시하고 있다.

신항은 움직이고, 시장 좌판은 버틴다.
그 둘 사이에는
‘일’이라는 단어가 놓여 있다.
일이란 무엇인가.
돈을 버는 수단?
세상과의 거래?
혹은 생존의 정당성?
일’이라는 단어는 늘 똑같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는 참 다르다.
누군가에게 일은 생계다.
살아내기 위한 반복이다.
누군가에게 일은 꿈이다.
도전하고 성장하는 발판.
또 누군가에게 일은 버팀목이다.
무너질 것 같은 삶을 지탱해주는 마지막 줄.
누군가에겐 짐이기도 하다.
벗어나고 싶은 압박.
같은 사무실에서 같은 업무를 하더라도,
그 안의 감정은 결코 같지 않다.
일은 사람마다 다른 표정을 짖게 만든다
신항에서 일은 ‘움직임’이다.
시간당 몇 대의 트럭이 빠져나가고,
몇십 톤의 화물이 실리고...빠짐 없이 정확하게 기록된다.
결과는 수치로 남고, 효율로 평가된다.
반면 시장에서의 일은 ‘버팀’이다.
수치도, 효율도 없다.
오늘 파는 물건이 어제보다 못할 수도 있고,
손님 하나 없이 해가 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자리에 나오는 것.
그것 자체가...일이다.

삶은 이런 곳에서 균형을 이룬다.
신항이 세상의 흐름을 이끈다면,
시장 좌판은 세상의 온기를 붙잡는다.
전자는 국가 경제의 상징이라면,
후자는 생존의 기술이며, 한 인간의 품위이다.
우리는 종종 화려한 일에 눈이 간다.
큰 수익, 큰 영향력, 큰 자부심.
하지만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은 그 조용한 삶의 뒷모습 속에도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있다.
일은,
크레인 위에서 벌어지든
시장 좌판 아래에서 이루어지든,
결국은 '누군가를 위한 책임'에서 시작된다.
"일...그건 빨대를 꽂는거다"
박범신 작가님의 '소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던 책이다.
네이버 내 블로그에 리뷰를 남기기도 했었었다.
가장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홀연히 사라진 아버지가 하는 독백 같은 말
작가는
누군가는 사회에 빨대를 꽂고,
누군가는 가족에게 빨대를 꽂힌 채 살아간다...는 말로 일을 표현한다.,
그 말이 서늘하면서도 오래 남는다.
내가 누군가의 ‘빨대’일 수도 있고,
누군가는 내 ‘빨대’일 수도 있다는 걸 잊었다.
그러나 중요한 건,
빨대가 어디에 연결되어 있든
우리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며 일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켜낸다는 것 자체가, 삶에 대한 가장 고요한 존엄이니까.
당신은 오늘 어떤 자리를 지켰나?
일은 무대가 아니다.
때론 박수도 없고, 조명도 없다.
심지어 누가 봐주지도 않는다.
하지만 내가 내 시간을 내어,
내 감정을 담아 한 자리를 지킨다면 그건 분명 ‘일’이다.
당신이 오늘 했던 바로 그 일도.
신항을 지나 시장 골목까지,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오늘을 지켰다.
그저, 하루를 무너지지 않게 버틴 것. 그게 이 세상을 유지하게 만든다.
그리고 나에게 묻는다.
나는 오늘
무슨 일을 했는가.
무엇을 지켰는가.
누군가를 위해
내 자리를 어떻게 채웠는가.
크레인의 불빛도 서서히 꺼져 간다.
'기억을 기록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성장 중입니다ㅣstory4 - 애드센스 실전 기록과 나의 6시간 (0) | 2025.07.29 |
|---|---|
| 브레인 노트ㅣP.2 - 감정은 기억을 지배한다 (6) | 2025.07.28 |
| 세상 구경 중 #3 - 민생회복 소비쿠폰 신청 총정리 : 대상, 금액, 신청방법 (0) | 2025.07.25 |
| 브레인 노트 l P.1 - 기억은 어디에 저장될까? (3) | 2025.07.25 |
| 성장 중입니다ㅣstory 3 - 래비야 여행가자 (8) | 2025.07.24 |